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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리뷰 : 시스템 속에서 스러진 이름, 소희를 기억하며

by lucet 2025. 4. 30.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다음 소희 (Next Sohee)
  • 감독: 정주리
  • 개봉연도: 2023년
  • 장르: 드라마
  • 상영시간: 135분
  • 출연: 배두나(유진 역), 김시은(소희 역), 심달기, 박우영 외
  • 수상: 제75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 선정, 제4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등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줄거리 요약 : ‘다음 소희’는 누구였는가?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청춘 드라마로, 특성화고 학생 소희가 현장실습을 나가 겪게 되는 부당노동과 정신적 압박, 그로 인해 맞이한 비극을 그리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소희(김시은)는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며 ‘사회 첫걸음’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책임감에 불타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하지만, 곧 열악한 노동환경과 감정노동, 실적 압박 속에 점차 소희의 마음은 무너져간다.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 상사의 질책,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은 그녀를 점점 더 외롭게 만든다.

결국 소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사건을 맡은 형사 유진(배두나)은 소희의 죽음을 단순한 자살이 아닌 구조적 타살로 바라보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영화는 두 여성, 소희와 유진의 시선을 번갈아 비추며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한 소녀를 사지로 몰았는지를 날카롭게 조명한다.


이 영화를 다루는 이유 :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다음 소희>는 단순한 감정 호소의 영화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소희를 죽였는가?” “왜 그 누구도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는가?” 이는 단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의 민낯이자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소희를 통해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또 다른 소희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바꾸어야 한다는 것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억'하는 것에서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등장인물 분석과 핵심 장면

1. 소희(김시은) : 이름조차 지워지는 청춘의 초상

소희는 이 사회에서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청년 노동자의 상징이다.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영화는 점점 소희의 눈빛이 흐려지고 미소가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무너지는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그러나 명확히 보여준다.

콜센터에서 전화를 끊고 손을 부들부들 떠는 장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상사의 눈치를 보는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러한 디테일은 김시은 배우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된다.

2. 유진(배두나) : 냉정한 수사관에서 인간적 시선으로

유진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로 등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희의 죽음에 개인적 감정을 담게 된다. 형식적인 수사를 넘어서 진심으로 분노하고, 좌절하며, 결국 ‘왜 아무도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녀가 소희의 책상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 학교와 회사에 찾아가 무력감을 느끼는 장면들은 우리 모두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사회 구조 속에서 무력한 한 개인이 어떤 연대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주제 해석 : 시스템, 그 무정한 거인

영화 <다음 소희>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단연코 '구조적 폭력'이다. 소희의 죽음은 단지 개인의 심약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과다. 영화는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분법적 구도’를 택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없다. 모두가 침묵했고, 방관했고, 그 결과가 ‘죽음’이다.

학교는 실적을, 회사는 수익을, 사회는 성과를 요구한다. 감정노동을 강요받은 소희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구조 역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관객으로 하여금 단지 ‘안타깝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이야기 속의 철학적 통찰 : 인간은 시스템의 부속품인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며 "악은 괴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시스템을 따라가는 인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다음 소희>는 바로 이러한 '사유하지 않는 무관심'에 경종을 울린다.

소희의 비극은 누군가의 명백한 악의가 아닌, 너무나도 평범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멈추지 않았으며, 결국 그녀는 무너졌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다음 소희가 생기지 않도록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결론 : 우리는 다음을 준비할 준비가 되었는가?

<다음 소희>는 감정의 파고를 넘어선다. 단순히 슬픈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기억을 요구하고, 분노를 자극하며, 변화를 촉구한다. 한 청춘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민낯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소희를 기억해야 한다. 그녀가 바란 ‘작은 평범함’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음 소희’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다. 시스템 속에서 침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정보 출처

  • 영화 <다음 소희> 공식 보도자료
  • 칸 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2023 Critics’ Week Selection)
  • 뉴스앤조이 인터뷰, 정주리 감독의 발언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 경향신문: “특성화고 실습생 사망 사건” 관련 기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