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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 리뷰 :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유머와 사랑의 초상

by lucet 2025. 5. 20.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
  • 감독: 제임스 L. 브룩스 (James L. Brooks)
  • 주연: 잭 니콜슨 (멜빈 우달 역), 헬렌 헌트 (캐럴 코넬리 역), 그렉 키니어 (사이먼 비숍 역)
  •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 개봉일: 1997년 12월 25일 (미국)
  • 상영시간: 139분
  • 수상 내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잭 니콜슨), 여우주연상(헬렌 헌트), 골든글로브 작품상(뮤지컬/코미디 부문) 등 다수
  • 평점: IMDb 7.7/10, Rotten Tomatoes 신선도 86% (2025년 기준)

줄거리 요약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강박장애를 앓는 중년 남성 멜빈(잭 니콜슨 분)이 우연히 두 사람—웨이트리스 캐롤(헬렌 헌트)과 이웃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렉 키니어)—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변화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지만, 관계 속에서 조금씩 서로를 보듬고 치유해 나가며 ‘가장 나은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듭니다.


왜 이 영화를 다루는가 : 결핍과 공감의 힘

이 영화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이 영화가 인간의 본성과 감정의 가장 기본적인 층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결핍'으로 정의됩니다. 멜빈은 강박장애와 자폐적인 사고 속에 갇혀 있고, 캐롤은 병든 아이를 돌보며 생존을 걱정해야 하며, 사이먼은 폭행 사건 이후 예술과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습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훨씬 더 깊고 진지한 인간적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결핍이 공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등장인물 분석 : 고장난 인간들의 불완전한 연대

멜빈 유달(Melvin Udall) - 혐오와 공포를 통한 자기 방어

멜빈은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무례하고 독설을 내뱉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극단적인 불안과 강박에 사로잡힌 한 인간이 보입니다. 매일 같은 식당에 가서 같은 자리, 같은 음식, 같은 웨이트리스를 요구하며, 손을 씻을 때는 비누를 한 번 쓰고 버리는 등 반복 강박 행동을 보입니다.

멜빈의 변화는 아주 느리고, 작지만 진심 어린 제스처에서 시작됩니다. 강아지를 억지로 맡아 키우며 생명을 돌보는 감각을 배우고, 캐롤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며 처음으로 자신 아닌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게 됩니다.

캐롤 코넬리(Carol Connelly) - 돌봄의 피로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성

캐롤은 병든 아들을 돌보며 생활의 중심을 아이에게 전적으로 쏟아붓고 있습니다. 멜빈과의 관계에서 처음에는 혐오를 느끼지만, 멜빈이 자신의 아들과 삶을 진심으로 고려하기 시작하자, 경계심이 풀리고 그와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멜빈에게 던지는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요”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중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이먼 비숍(Simon Bishop) - 상처 입은 창조자

사이먼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예술가로서의 자신감과 재능에 큰 타격을 입습니다. 멜빈과의 동행을 통해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삶의 본질과 마주하고, 마지막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사랑을 느낍니다. 그는 멜빈에게 처음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핵심 장면 분석 : 미움에서 이해로, 그 좁은 다리 위에서

1)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멜빈이 캐롤에게 고백하는 이 장면은 단순한 사랑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 최초의 '변화에 대한 고백'이며, 인간관계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전달된 긍정적 영향을 인지했을 때의 놀라운 감정입니다. 사랑이란 서로를 고치는 약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 사이먼의 그림 재개 장면

사이먼이 멜빈과 캐롤의 도움 속에 다시 그림을 시작하는 장면은 삶의 재기, 자기 자신에 대한 회복이라는 상징을 지닙니다. 예술을 통해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이 장면은, 회복의 여지가 얼마나 작고도 강력한지 보여줍니다.


철학적 해석 : 관계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명확한 철학적 주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진짜 삶을 배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실존주의와 관계 중심 윤리를 연결 짓게 됩니다.

멜빈의 변화는 강압이나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닌, '관계' 안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는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명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원래부터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 가능성을 지닌 존재였던 것입니다.

또한 '치유는 완벽함이 아닌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이 영화의 정서는 마르틴 부버의 철학—‘나-너’의 관계가 인간 존재를 완성시킨다는 주장과도 닿아있습니다. 멜빈은 처음에는 모든 인간을 ‘그들’로 취급했지만, 캐롤과 사이먼을 '너'로 인식하면서 진짜 존재로서 깨어납니다.


결론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이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웃음과 따뜻함 속에 삶의 진지한 질문을 품은 영화입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누구나 결핍과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마주하고,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때론 기대어 보는 순간—그때 우리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삶의 찰나를 맞이합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단어보다 더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와 '그 욕구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자료 출처

  • IMDb, “As Good as It Gets (1997)” 영화 정보: https://www.imdb.com/title/tt0119822/
  • Roger Ebert 영화 리뷰 (1997)
  • 영화 속 대사 인용은 영어 원문 및 번역 기준 직접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