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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 진실을 마주한 평범한 한 남자의 선택

by lucet 2025. 5. 5.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 감독: 팀 미엘란츠 (Tim Mielants)
  • 각본: 엔드라 커넌 (Enda Walsh)
  • 원작: 클레어 키건의 동명 소설 『Small Things Like These』
  •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외
  • 장르: 드라마
  • 제작국가: 아일랜드, 벨기에
  • 상영시간: 약 1시간 30분
  • 세계 최초 공개: 2024년 제7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개막작
  • 관람 등급: 미정

줄거리 요약 : 한 남자, 그리고 불편한 진실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탄광 노동자 ‘빌 퍼런’(킬리언 머피)은 평범한 가장이자 성실한 일꾼으로 살아간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그는 매일처럼 일과를 마치고 가족을 돌보며 조용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석탄을 배달하러 수녀원에 들른 날, 빌은 그곳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감금된 듯한 소녀, 거짓으로 가려진 진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침묵.

수녀원이 운영하는 ‘마그달렌 세탁소’—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며, 미혼모를 감금하고 노동을 강요하는 기관의 실체가 점차 드러난다. 빌은 이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는 점점 더 큰 내적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마침내 자기 자신과, 사회의 모순에 맞서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시작하며 : 왜 지금, <이처럼 사소한 것들>인가?

‘작은 것들’이 뒤흔드는 사회의 민낯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 중 하나로 남은 '마그달렌 세탁소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성적 순결을 강요받은 여성들이 수십 년간 수녀원의 이름 아래 감금되고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이 비극은, 20세기 후반까지도 아일랜드 사회에서 침묵으로 덮여 있었다.

감독 팀 미엘란츠는 이를 대대적으로 폭로하기보다는, 한 평범한 남성의 관점에서 서서히, 조용히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분노를 드러내기보다는 '양심의 무게'를 고요하게 풀어내며, 관객 스스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라면, 이 사소한 진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인물 분석 : 침묵에서 목소리로, 빌 퍼런의 변화

1. 빌 퍼런 : 회피에서 직면으로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빌’은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가장이다. 아내와 딸을 사랑하고, 이웃과도 잘 지내며, 정직한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 없이 자라난 과거는 그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외면하려 애쓰지만, 양심은 점차 그를 압박한다. 영화는 빌의 표정을 통해 이 내적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결국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자신의 안위를 걸고서라도 침묵을 깨기로 결심한다.

2. 수녀원, 사회, 그리고 공동체의 구조적 침묵

영화에서 수녀원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 사회의 위선과 침묵의 상징이다. 여성의 순결과 순응을 강요하던 종교적 권위, 그 앞에 무력했던 시민들, 그리고 그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일조했던 모두가 공범이다.

이 구조 속에서 빌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가족마저 그를 걱정하고 말리지만, 그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사소한 진실’이 결국 그의 모든 삶을 뒤흔드는 것이다.


이야기 속 철학적 질문 : 작은 것들이 쌓아올린 용기

1. 윤리적 딜레마 : 무엇이 옳은 일인가?

영화는 한 개인이 ‘지켜야 할 것’과 ‘말해야 할 것’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빌의 고통은 단순히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른 척하면 편하다”는 유혹과, “이대로 살아도 된다”는 자기기만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이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고, 그가 내리는 선택은 위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이기에 더 큰 울림을 준다.

2. 기억과 역사 : 과거를 마주할 용기

클레어 키건의 원작은 이야기한다. 아일랜드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문제를 외면해 왔는지를. 영화는 과거를 단죄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기억을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때 누군가는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고 조용히 말한다.

이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진실’은 침묵 속에 묻히고 있지 않은가?


주제 확장 : 우리가 함께 돌아보아야 할 이야기

1. 여성의 권리, 종교의 위선

‘마그달렌 세탁소’는 단지 하나의 과거 사건이 아니다. 이는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종교와 권력이 손을 잡고 얼마나 많은 여성의 삶을 짓밟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영화는 그 고발을 자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을 선택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돌아보게 하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침묵 속에 있는가’를 묻는다.

2. 침묵을 깨는 것, 그것이 인간다움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거대한 영웅서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감정의 깊이는 매우 크다. 어떤 진실은 대대적인 혁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조용한 선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


결론 : "작은 용기"가 남기는 깊은 울림

킬리언 머피의 절제된 연기, 팀 미엘란츠 감독의 섬세한 연출, 그리고 클레어 키건의 문학적 서사가 어우러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말해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조용한 송가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 척하며 살아왔는가?
  • 사소해 보이는 진실이, 사실은 우리 삶의 윤리를 결정하지 않는가?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훈훈한 감동이 아닌 차가운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것들’을 통해 가장 큰 질문을 던진다.


자료 출처

  • 영화 <Small Things Like These> (2024), 베를린국제영화제 자료집
  • 원작 소설 『Small Things Like These』 by Claire Keegan
  • BBC, The Guardian 인터뷰 기사
  • 아일랜드 마그달렌 세탁소 관련 기록 (Irish Times, 2023년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