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 박찬욱 감독이 빚어낸 사랑과 죄의 미학

by lucet 2025. 5. 16.

 

영화 기본 정보

  • 영화 제목: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 감독: 박찬욱
  •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고경표 등
  • 장르: 멜로, 미스터리, 범죄
  • 개봉일: 2022년 6월 29일 (한국)
  • 러닝타임: 138분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수상 및 기록:
    •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박찬욱)
    • 제43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등 다수 수상
    •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공식 출품작
  • 제작/배급: 모호 필름 / CJ ENM

줄거리 요약 : 진실과 감정 사이, 모호한 경계선

산에서 한 남성이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형사 해준(박해일)은 수사를 맡으며,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녀는 냉정하고 조용하며,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해준은 서래를 의심하면서도 점차 그녀에게 매혹되고, 그녀 역시 해준의 정직함과 따뜻함에 끌리게 된다. 그러나 서래는 남편을 실제로 살해했을 가능성이 짙고, 해준은 점점 자신의 도덕성과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해준은 결국 서래를 보내지만, 이후 또 다른 사건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남편의 죽음, 그녀의 주변에 드리운 또 하나의 그림자. 진실은 무엇이며, 해준과 서래의 감정은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죄인가?


시작하며 : 왜 《헤어질 결심》인가?

이 영화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헤어질 결심》은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다룬다.
박찬욱 감독은 ‘이별’이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주제를 ‘수사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풀어낸다.

‘왜 사랑은 의심과 함께 오는가?’
‘사랑은 죄가 될 수 있는가?’
‘이별은 감정인가, 결단인가?’

이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시각적 은유, 서사적 아이러니, 정서적 긴장으로 풀어낸다. 이 리뷰는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과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본론 : 등장인물 분석과 핵심 장면 해석

1. 형사 해준 : 완벽함 뒤에 숨어 있던 허무

해준은 스스로를 ‘예의 바르고 깔끔하며 정직한 경찰’로 규정한다. 그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규칙적이고 통제된 듯 보이나, 사실은 공허하다.

서래를 만나면서 그는 처음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 감정은 욕망이자 연민이며, 동시에 죄책감이기도 하다. 해준은 자신이 믿던 ‘질서’가 감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목도하며 무너진다.

2. 서래 : 정체성과 진심의 역설

서래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인물이다. 그녀는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중국인이다. 그녀는 사랑을 주지만, 동시에 사람을 죽인다. 그녀는 늘 진심을 말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그녀의 모든 행위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관객은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수단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인지 끝까지 판단할 수 없다. 그 모호함은 서래라는 인물이 단순한 팜파탈을 넘어서 ‘감정의 다층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게 한다.

3. 바다 장면 : 결정의 은유, 감정의 종착지

영화의 후반, 서래는 바닷가에 무덤을 만들고 자신을 묻는다. 물리적으로는 자살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사랑의 표현이자 죄의 사죄다. 그녀는 해준이 더 이상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지운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의 은폐'와 '기억의 조작'이라는 주제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바다는 모든 것을 삼키는 공간이며, 그녀는 자신을 그곳에 묻는다. 해준은 그녀를 잃고 울음을 터뜨리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주제 해석과 철학적 질문

1. 사랑은 죄인가, 책임인가?

서래의 사랑은 죽음을 동반한다. 해준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의심한다. 이들은 서로를 원하지만, 함께할 수 없다. 이 아이러니는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구조이자, 도덕과 욕망의 경계선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면 죄가 되는가? 아니면,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가? 이 영화는 사랑이란 도덕적 결단을 요구하는 감정임을 암시한다.

2. 언어와 정체성 :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서래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그녀의 정체성은 타자다. 그녀의 말은 진심처럼 들리지만, 항상 의심을 동반한다. 언어는 그녀의 도구이자 감정의 방어막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 ‘언어의 경계’를 통해 진실의 전달이 항상 불완전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말로 다 하지 못하고, 말로 다 믿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묘사한다.

3. 결심이란 무엇인가?

해준은 서래를 보내고, 그녀를 의심하고, 그녀를 사랑한다. 그는 매번 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감정 앞에서 무력하다. 서래 역시 해준을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그 결심의 이면에는 여전히 사랑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인 ‘헤어질 결심’은 단순한 이별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방식이다.
즉, 진짜 사랑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결단일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결론 : 우리는 왜 끝을 알면서도 사랑하는가?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끝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끝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영화다.
사랑은 예측 가능하지 않으며, 정의할 수 없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고, 의심하고, 그리고 언젠가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인간의 모순된 감정과 선택을 가장 아름답고 비극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관객은 해준의 눈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도 흘리게 되며, 그 눈물은 영화가 남기는 정서적 진동으로 오래 남는다.


자료출처

  • IMDb 영화 정보: https://www.imdb.com/title/tt12477480/
  • 2022 칸 국제영화제 보도자료
  • 씨네21 영화 리뷰 (문석 기자)
  •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헤어질 결심》 해설
  • 『사랑과 죄의식』 – 지그문트 바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