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브스턴스>리뷰 : 성과 권력의 경계에서 탄생한 충격의 미학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 감독: 코랄리 파르자 (Coralie Fargeat)
- 장르: 공포, SF, 바디호러
- 제작국: 프랑스, 미국
- 개봉연도: 2024년
- 주연: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 상영시간: 138분
- 언어: 영어
- 영화 등급: R (강한 폭력성과 누드, 고어 등으로 인해)
- 칸 영화제: 2024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 출처: Festival de Cannes
줄거리 요약 : 젊음과 아름다움을 주입하는 물질, 그리고 분열
주인공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중년의 여성으로, 전성기를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텔레비전 쇼에서 해고된다. 오랜 세월 자신의 아름다움과 몸으로 살아온 엘리자베스는 갑작스러운 퇴장을 견디지 못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수상한 실험 프로그램 ‘서브스턴스’를 선택한다.
이 ‘서브스턴스’는 한 번만 주사하면 젊고 아름다운 또 다른 자아가 생성되어, 일정 시간 동안 삶을 교체하거나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약물이다. 이 새로운 몸을 지닌 자아는 ‘수브’(마가렛 퀄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엘리자베스가 갖지 못했던 젊음과 활력을 누린다.
처음엔 만족스럽기만 했던 두 존재의 공존은 점차 충돌로 번진다. 수브는 점차 독립적인 인격을 갖고 엘리자베스의 삶을 넘보게 되며, 현실과 환상, 존재와 복제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선정이유 : 파괴와 재탄생, <서브스턴스>가 말하는 여성 서사의 새로운 지평
2024년 칸 영화제를 충격으로 물들인 영화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공포나 육체적 변형을 넘어, 여성의 욕망과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 사이의 충돌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리벤지 (Revenge, 2017)>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여성의 신체를 주체적이고도 낯설게 바라보며, 장르적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특히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은 단순한 연기를 넘어 '몸을 내주는 예술'에 가까운 몰입을 보여준다.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바디호러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신체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 노화에 대한 강박,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그리고 여성의 존재 자체를 다시 쓰려는 일종의 '실험'이다. 시각적 충격과 메시지의 복합적 결합으로 이 영화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포를 제시한다.
등장인물 및 상징 분석 : 분열된 자아, 사회적 강박의 화신들
1. 엘리자베스 (Elizabeth) – 해체되는 주체
엘리자베스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 이미지의 집약체이자, 그 이미지에 짓눌린 존재이다. 그녀는 늙는다는 이유만으로 상품 가치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기 위해 물질(서브스턴스)을 선택한다. 그녀의 분열은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닌,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위기이다.
2. 수브 (Sub) – 욕망이 만든 괴물
수브는 엘리자베스가 갈망한 이상화된 자아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젊고 예쁜 존재가 아니라, 점점 엘리자베스를 대체하고 지배하려 한다. 수브는 욕망이 물질화된 상징이며, 인간 내면의 탐욕이 육체를 통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3. 미디어와 사회 – 폭력적 시선의 구조
영화 전반에서 엘리자베스를 대상으로 한 카메라, 대중의 반응, 방송국의 태도는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통제하려는 미디어 구조의 은유다. 영화 속의 세계는 현실의 여성도 동일하게 겪는 ‘시선의 폭력’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핵심 장면 분석 : 바디호러와 철학이 만나는 접점
1. 첫 번째 주사 장면 – 쾌락인가, 희생인가?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처음 투여할 때, 카메라는 신체가 분열되는 순간을 잔인하리만치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는 관객에게 단순한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대가로 젊음을 얻고자 하는지를 묻게 만든다. 이 장면은 ‘몸’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윤리적, 사회적 질문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 두 자아의 갈등 장면 – 주체의 붕괴
엘리자베스와 수브는 단순한 ‘두 인물’이 아닌 ‘한 인격의 두 얼굴’이다. 이 둘의 갈등은 내면의 자아 분열을 시각화한 것이며, 한 인물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심판하는 모티프로 작동한다. 영화는 이 충돌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전적인 철학 질문을 다시 묻는다.
3. 결말의 장면 – 순응 혹은 파멸?
결말에서 엘리자베스는 수브를 제어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빼앗긴다. 그녀는 ‘젊음’과 ‘이상’의 환상 속에서 존재의 뿌리를 잃는다. 이 엔딩은 극단적인 파국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단순히 절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아는 진짜인가?”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주제 해석 및 철학적 질문
1. 존재는 단일한가? – 정체성에 대한 질문
《서브스턴스》는 정체성이 외모와 나이로 결정된다는 사회 통념을 부정하며, 자아란 사회가 규정한 기준에 따라 분열될 수 있음을 말한다. 엘리자베스와 수브의 갈등은 자기 정체성의 혼란과 사회의 강요된 이상 사이의 충돌이다.
2. 몸은 나인가, 소유물인가? – 신체의 철학
신체는 더 이상 순수한 자아의 매개체가 아니다. 영화에서 몸은 소비되고, 조작되고, 분리될 수 있는 ‘물건’처럼 다뤄진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몸이 얼마나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소외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 욕망은 자율적인가, 주입된 것인가?
엘리자베스는 정말 자신이 원해서 젊음을 원했을까? 아니면 사회가 그녀에게 주입한 기준을 따라간 것일까? 《서브스턴스》는 현대 소비사회가 개인의 욕망까지도 상품화하고, 이를 주입함으로써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에 종속되게 만든다는 점을 비판한다.
결론 : 진짜 나로 산다는 것의 의미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호러도, 단순한 페미니즘 영화도 아니다. 이는 철학적인 질문과 사회 비판이 결합된, ‘육체’라는 매개를 통한 정체성의 해체와 재구성을 보여주는 도발적 서사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나를 정의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외모인가, 젊음인가, 사회적 가치인가?
이 영화는 관객에게 말한다. 진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비판적 거리두기’와 ‘자기 통찰’을 동반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엘리자베스의 파멸은 단지 실패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현실에서 저지르고 있는 자기부정과 환상 추구의 극단적인 귀결이다.
참고 자료 및 출처
- 2024 칸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https://www.festival-cannes.com
- IndieWire, <The Substance Review – A Body Horror Triumph>
- The Guardian, 영화 리뷰 (2024.05.18)
- Vanity Fair 인터뷰: 데미 무어 & 마가렛 퀄리
- 『페미니즘과 바디 이미지』, 수전 보르도
- 『나는 누구인가』, 토머스 메츠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