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프러제트>리뷰 : 목소리조차 빼앗긴 이들의 뜨거운 외침
1.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서프러제트 (Suffragette)
- 감독: 사라 가브론 (Sarah Gavron)
- 각본: 애비 모건 (Abi Morgan)
- 출연: 캐리 멀리건, 헬레나 본햄 카터, 메릴 스트립, 브렌던 글리슨 외
- 장르: 드라마, 역사
- 개봉연도: 2016년 (한국) / 2015년 (영국)
- 상영시간: 106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IMDb 평점: 6.8/10
- Rotten Tomatoes 지수: 신선도 73%
- 배급사: Focus Features, Pathé
2. 줄거리 요약
이 영화는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특히 과격한 행동주의를 추구한 ‘서프러제트(Suffragette)’들의 투쟁을 조명합니다. 주인공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는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입니다. 어느 날 동료의 권유로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점점 더 깊숙이 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 나며, 아들까지 빼앗깁니다. 하지만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과 같은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 불평등과 싸우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실존 인물인 에멜린 팽크허스트(메릴 스트립 분)도 등장하며, 이 영화는 단순한 감정 호소에 그치지 않고, 투쟁의 전략과 여성들의 희생, 사회적 파장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3. 시대적 배경 : 왜 여성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영국 사회는 여성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투표권은 물론이고, 교육, 노동, 가정 내 권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남성의 부속물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하층 계급의 여성들은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하며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고, 법적으로 자녀에 대한 권리조차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1903년 에멜린 팽크허스트가 이끄는 ‘여성 사회정치 연합(WSPU)’은 기존의 평화적인 청원 방식에서 벗어나 과격한 행동주의를 선택합니다.
창문을 깨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고, 체포와 단식 투쟁, 옥중 학대까지 감내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권리 요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규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4. 인물 분석 : 모드 와츠, 평범한 여성이 목소리를 갖기까지
4-1. 모드 와츠 : 억압받던 노동자에서 투사가 되기까지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주인공 모드 와츠는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당시 수많은 무명의 여성 노동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처음엔 운동에 반신반의합니다. “여성이 정치에 무슨 필요가 있냐”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죠.
하지만 동료의 부당한 대우와 상사의 성폭력, 임금 착취를 보며 그녀는 점점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는 목소리가 없지?”, “왜 그 누구도 우리의 고통을 듣지 않지?”
그녀의 변화는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를 잃고, 경찰의 폭력을 겪고,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행동에 나섭니다. 이 변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억압을 외면하고 있는가?”
4-2. 에디스 엘린 : 행동주의 여성 의사
헬레나 보넘 카터가 연기한 에디스는 과격한 행동주의자이자, 의사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포기하고 투쟁에 참여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무력시위와 파괴 활동을 이끌며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당시 서프러제트들이 왜 폭력적인 방식까지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4-3. 에멜린 팽크허스트: “권리는 외치는 자에게 주어진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팽크허스트의 등장은 짧지만 강렬합니다. 그녀는 “권리는 외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메시지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에게도 직접적인 울림을 줍니다.
5. 이야기 속 철학 : ‘불복종’이라는 윤리와 그 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철학적 테마는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입니다. 여성들은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법의 부당함을 드러내려 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치명적입니다. 모드는 아들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며, 주변의 조롱과 배척을 겪습니다.
영화 후반부, 여성 운동가 중 한 명이 경마장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는 장면은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이 장면은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사회의 변화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가?”
“나 하나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아닐까?”
이런 철학적 질문은 영화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불복종은 개인의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충돌이며, 관객의 삶 속에서도 반복되는 갈등입니다.
6. 결론: <서프러제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현재적 질문
<서프러제트>는 단지 과거 여성 참정권 투쟁의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얼마나 무관심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 “나는 지금 어떤 부당함에 눈을 감고 있는가?”
- “나의 침묵은 누구의 권리를 지우고 있는가?”
- “내가 누리는 권리는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가?”
이 영화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넘어,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인문학적 외침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영화 <서프러제트> 공식 홈페이지 및 IMDb
-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 관련 역사 아카이브: UK National Archives
- 관련 서적: <Votes for Women: The Struggle for Suffrage Revisited> by Jean H. Baker
- BBC Documentary - The Suffragettes (2013)